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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석 변리사 | 내돈내산 명품, 리폼하면 상표권 침해?

등록일 2024-09-19

장홍석 변리사가 기고한 IP 칼럼이 특허청 디자인맵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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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맵 | DESIGNMAP

 


몇 년 전부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명품을 원래 디자인과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하거나, 제품의 원단이나 부자재를 활용해 전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이른바 리폼 또는 업사이클링이 유명 연예인의 SNS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어서 판결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리폼 업자에 대해 저명한 명품 브랜드의 상표권 침해를 인정한 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10. 12 선고 2022가합513476 판결 – 이 있어 이를 소개해 드립니다[이해를 돕기 위하여 일부 내용을 생략·수정하였습니다].

 


[출처 : 루이비통 공식 홈페이지]

 

 

소개해드릴 판결에 관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건의 원고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명한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입니다. 특히 아래와 같은 루이비통 특유의 문양은, 이 문양이 제품 전체에 반복적으로 표시된 가방을 길거리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하여 ‘3초백’이라고 불릴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루이비통은 아래 문양에 대한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사건의 피고는 가방, 지갑 등을 전문적으로 수선하는 업자로, 고객의 의뢰를 받아 고객이 소유한 루이비통 가방의 원단을 이용하여 아래와 같이 원래 제품과 전혀 다른 디자인의 가방이나 지갑을 제작하여 고객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원고는 피고의 이러한 행위가 실질적으로 루이비통의 등록 상표가 표시된 제품을 무단으로 제작한 것이므로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는 다음을 근거로 자신의 행위가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 원고의 상표권은 피고에게 리폼을 의뢰한 소비자들에게 원고가 제품을 판매하면서 소진되었음

2) 리폼한 제품은 상표법에서 말하는 ‘상품’에 해당하지 않고, 자신은 리폼한 제품을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었을 뿐이며, 리폼 제품에 표시된 상표를 자신의 출처를 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상표적으로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음

 

이에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1) 상표권 소진 여부와 2) 상표적 사용 여부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표권자 등이 국내에서 등록상표가 표시된 상품을 양도한 경우에는 해당 상품에 대한 상표권은 그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소진되고, 그로써 상표권의 효력은 해당 상품을 사용, 양도 또는 대여한 행위 등에는 미치지 않습니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 
 

즉, 상표권자가 한번 제품을 판매하고 나면, 제품을 구매한 사람이 해당 제품을 사용하거나 되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행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상표권자가 상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상표권이 소진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상표권자 등으로부터 상품을 양수한 자가 원래의 상품과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의 가공이나 수선을 하는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생산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상표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등록상표가 각인된 1회용 카메라의 빈 용기를 수집하여 다시 필름을 장전하고 일부 포장을 새롭게 하여 제조, 판매한 행위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도3445 판결).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상표권이 소진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므로 상표권이 소진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피고는 리폼 과정에서 원고 가방의 부품, 원단 등을 분해한 다음 재단, 염색, 부품을 부착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고, 이렇게 만들어진 리폼 제품은 크기, 형태, 용도 등이 원래의 원고 가방과 달랐습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단순한 가공이나 수리의 범위를 넘어 상품의 동일성을 해할 정도로 본래의 품질이나 형상에 변경을 가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는 실질적으로 생산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아, 원고의 상표권이 소진되지 않았으므로, 원고는 피고의 리폼 행위에 대해 여전히 상표권의 효력을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란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하는 행위, 상품 또는 상품의 포장에 상표를 표시한 것을 양도 또는 인도하거나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제공하는 행위 또는 이를 목적으로 전시하거나 수출수입하는 행위 등을 의미합니다(상표법 제2조 제1항 제11호). 
 

다만, 상표법이 등록상표권에 대해 상표 사용의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이유는 제3자가 지정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에 대해 동일·유사한 상표를 사용하는 경우, 등록상표의 출처 표시 기능과 품질 보증 기능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대법원 1995. 11. 7. 선고 94도3287 판결 참조).
 

따라서 제3자가 상표법상 규정된 형식적인 상표 사용 행위를 했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으로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기 위한 '상표로서 사용'되지 않았다면 상표권 침해로 평가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상표로서의 사용’을 ‘상표적 사용’이라고도 합니다.

 

대법원 역시 타인의 등록상표를 이용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표의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출처표시를 위한 것이 아니어서 상표의 사용으로 인식될 수 없는 경우에는 등록상표의 상표권을 침해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3. 6. 13. 선고 2001다79068 판결 등). 
 

또한 대법원은 상표로서 사용되고 있는지, 즉, 상표적 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품과의 관계, 당해 표장의 사용 태양, 등록상표의 주지저명성 그리고 사용자의 의도와 사용경위 등을 종합하여 실제 거래계에서 그 표시된 표장이 상품의 식별표지로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3. 1. 24. 선고 2011다18802 판결 등).


 

먼저 피고의 행위가 형식적으로 상표 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이 사건에서는 리폼 제품이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습니다.

 

피고는 상표법에서 말하는 ‘상품’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형태의 물품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양산성’과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도달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 교환·분배되는 ‘유통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리폼 제품은 소비자로부터 개별적으로 받아 리폼한 후 다시 소비자에게 반환된 것에 불과하여 양산성 및 유통성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리폼 제품도 그 자체로 교환 가치를 지닌 독립된 상거래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이므로 상표법상 ‘상품’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법원은 이 사건 각 리폼 제품이 실제로 시장에 유통되었다는 증거는 없으나, 상표법 규정의 취지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유통된 경우에만 상표법상 ‘상품’으로 평가할 수는 없으며, 상표가 부착된 상품이 양산성을 갖추었는지와 관계없이 상표의 출처 표시 기능은 보호되어야 하므로, 상표법에서 말하는 ‘상품’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침해 행위 자체에 양산성이 요구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피고의 행위가 실질적인 상표 사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가 리폼한 제품에 표시된 상표가 출처 표시를 위한 것이므로, 피고가 리폼 제품에 표시된 상표를 상표적으로 사용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가) 이 사건에서 원고의 상표는 상당히 주지저명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원고는 원단에 상표를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으로 그 출처를 드러내는 기법을 흔히 사용하였고, 이러한 기법 역시 잘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나) 이 사건 각 리폼 제품은 원고 가방의 원단을 사용함에 따라, 원고 가방과 마찬가지로 외부에 이 사건 각 상표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이 사건 각 리폼 제품에서 원고의 상표는 상당히 돋보인다.


다) 원고가 이 사건 각 리폼 제품과 매우 유사한 형태의 가방 및 지갑을 제작ㆍ판매한 경우도 상당수 있다.


라) 피고는 이 사건 각 리폼 제품을 가방 소유자 이외의 제3자에게 판매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가방 소유자(즉, 피고에게 리폼을 의뢰한 사람)는 피고로부터 이 사건 각 리폼 제품을 받더라도 원고가 직접 제작ㆍ판매한 것으로 오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방 소유자로부터 이 사건 각 리폼 제품을 양수하거나 가방 소유자가 지니고 있는 이 사건 각 리폼 제품을 본 제3자가 그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있는 등 일반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그 출처를 혼동할 우려가 있음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고의 리폼 행위가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하고, 피고가 원고에게 1,5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소개해 드린 판결은 여러 언론에 보도되어 관심을 끌었으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현재 이 사건의 항소심을 심리하고 있는 특허법원은 이 사건이 리폼 업계 등 관련 업계를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해, 집중 심리를 위해 특별재판부에 회부하였습니다.
 

특허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 더 나아가 대법원에서 이 사건이 다뤄질 경우 어떠한 결론이 내려질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