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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석 변리사 | 패션 아이템, 중요한 건 디테일보다 그 조합!

등록일 2024-11-27

장홍석 변리사가 기고한 IP 칼럼이 특허청 디자인맵에 게재되었습니다.

특허청 디자인맵은 디자인 제도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 및 법률 정보를 제공하며, 물품별·형태별 디자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입니다.

디자인맵 | DESIGNMAP

 


이제 상품의 형태는 단순한 상품의 외관을 넘어,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으며, 기업들도 창의적인 상품 형태를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품의 형태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다만, 디자인보호법과 상표법(상품의 입체적인 형태를 입체상표로 등록받을 수 있습니다)에 따라 권리를 획득하고 행사하기 위해서는 ‘등록’이 필요하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 내지 (다)목에서 규정하는 상품·영업표지로 보호받으려면, 국내의 수요자들에게 상품의 형태가 상품 또는 영업을 표시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등록’이나 ‘인지도 획득’ 모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상품의 형태가 중요한 제품 중에는 유행 주기가 짧은 것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상품의 형태는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방이 어렵지 않은 편이라, 신제품 출시 후 며칠 만에 모방품이 시장에 깔리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돈을 들여 등록을 받더라도, 권리 행사를 하려 할 때는 이미 모방품은 팔릴만큼 팔리고 유행은 지나버린 경우가 많아, 신제품 개발에 들인 노력을 보상받지 못하고 모방품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억울한 사례가 빈번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도입된 것이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은 ‘타인이 제작한 상품의 형태를 모방한 상품을 양도·대여 또는 이를 위한 전시를 하거나 수입·수출하는 행위(이하, “상품형태 모방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합니다. 다만 ‘상품의 형태가 갖추어진 날부터 3년이 지난 상품이나, 타인이 제작한 상품과 동종의 상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형태를 모방한 상품을 양도하는 등의 행위’는 제외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통상적인 상품의 형태와 다른 특징이 있는 상품을 출시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나의 상품형태를 모방한 상품을 판매하는 자가 있다면,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의 상품형태 모방행위에 해당함을 문제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이 문제되는 사건에서는 제품의 형태가 동종 상품의 통상적인 형태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관하여 흥미로운 판단을 한 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2. 4. 28. 선고 2021나2032690 판결 – 이 있어 이를 소개해 드립니다[이해를 돕기 위하여 일부 내용을 생략·수정하였습니다].

 

 

소개해드릴 판결에 관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건의 원고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명한 명품 브랜드입니다.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제품은 복주머니와 같은 형상의 일명 ‘버킷백’이라 불리는 여성용 가방으로, 원고는 국내 가방 생산업체인 피고가 자사 제품의 형태를 모방한 제품을 제조·판매하였으며, 이러한 피고의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상품 형태 모방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먼저 법원은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의 형상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개별 구성 요소들인 가방 전체의 크기, 조임끈을 가방에 관통시키는 구멍의 개수, 위치, 모양 및 크기, 조임끈과 조임끈을 모으는 가죽 편의 모양과 크기, 가방 본체와 어깨끈을 결합시키기 위한 가방 측면에 부착된 가죽 편의 위치, 모양과 크기, 해당 가죽 편에 결합된 금속고리의 모양과 크기, 가방 본체와 결합시키기 위해 어깨끈 끝단에 부착된 금속고리의 모양과 크기가 모두 같거나 비슷하며, 그로 인해 조임끈을 조였을 때나 조이지 않았을 때나 가방 본체가 갖는 앞면, 옆면, 윗면의 형상 또한 거의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의 차이점인 원고 제품에 있는 내부 수납공간은, 이를 생략하는 것이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변형이고, 내부 수납공간이 조임끈 아래에 위치하여 이를 생략하더라도 전체적인 상품 형태에 변형을 가져온다고 보이지 않으며, 가방의 소재와 색상은 생산자가 언제든지 다양한 방식으로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데다가 실제로 원고와 피고도 같은 형상을 가진 가방을 여러 소재나 색상을 이용하여 다양하게 출시해 왔으므로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의 소재나 색상의 차이가 상품 전체의 형태를 다르다고 보이게 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고 하기는 어렵고, 그 밖에 조임끈, 어깨끈, 바닥 처짐 방지 패드나 바닥원단 보호받침대, 로고 장식 내지 털방울 장식 추가 등은 그 변경의 정도가 미미하고 쉽거나, 탈부착이 가능하므로 상품 전체의 형태에 별다른 차이를 주지 않는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의 차이점은 실질적인 동일성을 잃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개변으로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은 상품 형태가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이 모두 먼저 출시된 다른 가방들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을 결합한 형태여서,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의 공통점이 동종, 즉 같은 종류의 상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형태에 불과하여 상품형태로 보호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부정경쟁방지법 제2호 제1호 (자)목은 동종의 상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형태를 모방한 상품을 양도하는 등의 행위를 부정경쟁행위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동종의 상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형태란, 동종의 상품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형태로서, 상품의 기능·효용을 달성하거나 그 상품 분야에서 경쟁하기 위하여 채용이 불가피한 형태 또는 동종의 상품이라면 흔히 가지는 개성이 없는 형태 등을 의미합니다(대법원 2017. 1. 25. 선고 2015다216758 판결 참조).

 

법원은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의 공통점을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보면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시중에 출시되어 있었던 버킷백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형상이라는 점은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법원은 각각의 공통점에 대응하는 버킷백 형태를 이루는 개별구성요소에는 아래의예시와 같이 원고의 제품이나 피고의 제품의 그것과 다른 여러 가지의 형상도 존재하며, 원고 제품 출시 전에 각 개별 구성요소를 모두 원고 제품과 같이 선택하여 결합한 제품이 출시되거나 유통되었다고 볼 증거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법원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에 의하여 보호되는 상품형태는 상품 전체의 형태이며, 각각의 구성 부분을 분해하여 보면 흔한 형태라고 하더라도 그 결합으로 인하여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졌다면 (그 구성 형태가 아주 단순하고 그 결합 또한 흔히 있을 수 있는 정도로서 전체적으로 보아 별다른 형태적 특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아닌 한) 동종의 상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형태라고 볼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방과 같이 흔히 사용되고 여러 형태가 다양하게 창작되었던 물품은 다양하고 많은 공지의 구성 형태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도 상품 형태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게다가 피고 역시 스스로 위와 같은 선택과 결합으로 형성된 피고 제품 형태가 기존의 제품들과 다른 형태를 갖추었음을 전제로 제3자를 상대로 피고 제품의 상품 형태 보호를 주장한 바 있으며,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은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하였는데 이는 위와 같은 개별 구성요소의 선택과 결합 방식으로 인해 형성된 제품 형태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 등을 근거로, 법원은 원고 제품의 형태가 동종 상품이 통상적으로 가지는 형태라고 볼 수 없으며, 타인의 모방에 따른 부정경쟁행위로부터 보호를 부여할 가치가 있는 정도의 자금과 노력의 투여에 따라 원고가 구축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원고 제품과 피고 제품 형태의 동일성까지 고려하면, 피고가 원고 제품을 기초로 피고 제품을 디자인한 사실을 알 수 있어 피고 제품은 원고 제품의 형태를 모방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 소정의 상품형태 모방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고, 피고가 원고에게 7,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하였으며, 피고가 대법원에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 – 상고한 사람의 주장에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사유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경우 대법원이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 - 로 판결은 확정되었습니다. 

소개해 드린 판결은 상품 형태의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비슷한 형태의 구성요소를 가진 제품이 시중에 이미 출시되어 있었다 하여도, 그러한 구성요소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면 이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자)목에 의하여 보호할 가치가 있는 상품형태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의류나 가방과 같은 패션 아이템은 디테일한 구성요소까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고, 기존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잘 조합하고 배치하는지가 디자인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소개해 드린 판결은 이러한 거래실정을 잘 반영한 것으로 생각됩니다.